제6화. 압하지야로 가는 여정
창밖으로 저 멀리 눈 덮힌 캅카스 산맥이 펼쳐진다.
기차에 내리기 5분 전, 엘레네 앞좌석에 앉은 한 부부가 있었다. 그들도 주그디디 도착을 알고 짐을 꾸리고 있을 때, 내 레이더망에 걸리는 반가운 단서를 발견하였다. 부부가 녹색카드를 꺼내고 있는데 바로 ‘압하지야 신분증’이다. 대박이다! 생각지도 않게 여기서 압하지야인을 만날 줄 몰랐다.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릴 때, 나는 그 부부에게 다가가 압하지야에서 왔느냐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딱 걸렸어! 나는 이 호기(好機)를 놓치지 않으려고 동행해도 좋다고 하니 좋다고 허락을 한다. 나는 여기 구세주를 만난 걸,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이 분과 함께 가면 압하지야 가는 길이 순탄하리라 믿고 동행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주그디디 기차역 바깥으로 한 무리의 사람과 차량이 어지럽게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부부는 많이 다녀보아서 하던 대로 택시를 잡고 일사천리로 잉구리로 쾌속질주를 하니, 나의 압하지야 여행은 별 장애 없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저절로 속으로 개선가를 흥얼거리며….
택시는 조지아 초소에 내리자마자, 초소 안에서 조지아 경찰이 나를 보고 오라고 손짓한다. 내가 수쿠미 간다고 하니, 경찰은 내 여권을 가져가 컴퓨터로 기록하고 돌려준 후 잘 다녀오라고 한다. 맑은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더니 이슬비 같이 내리고 있다. 나는 모자를 둘러쓰고 부부를 쳐다보니, 잠깐 기다려 라고 한다. 경찰서 옆 구급차가 출발하려 하자 부부가 한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더니 우리보고 구급차 뒤에 타라고 한다. 아마도 그 부부와 구급차 관계자와 아는 사람이다. 나도 타면서 그 사람에게 조지아어로 ‘마하르도바’ 하고 감사인사를 하니 그는 러시아어로 ‘스쁘라시바하고’ 감사인사를 써야 한다면서 웃으며 차 문을 닫아준다. 그러고 보니 압하지야는 조지아에 있지만, 정치적으로 러시아가 영향권을 행사하는 중이다. 우리를 태운 구급차는 출발하고 잉구리 다리를 지나자 한 무리의 군인이 차를 막고 앞에 타는 응급대원과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차 안에 있어 군인들의 눈에 안 뛰는데, 지금 이 느낌 꼭 몰래 국경에 밀입국하는 느낌이 든다. 군인들은 별 수색 없이 차를 통과시킨다. 다리를 통과 후 구급차는 우리를 내려주고, 환자를 태우고 다시 돌아간다.
이슬비는 계속 내리고 압하지야 검문초소가 나를 가로막고 있다. 경찰초소와 작은 세관 건물로 하나 밖에 없는 조지아 측 초소보다 더 엄격하다. 압하지야 공화국이라는 간판과 철조망, 망루, 참호 그리고 경찰과 군인들이 쫙 깔려서 포로수용소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검문소에서 제지를 당한다. 지금까지 나를 잘 인도 해 주었던 부부와 헤어지고 이제부터 여기에서는 나 홀로 시작해야 한다. 검문소에서 내 여권과 복사해온 입국허가증을 가지고 들어가면서 초소 옆길 공터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비는 더 거세게 내리고 공터에는 비를 피할 장소도 없다. 공터에서 초소를 지켜보니 군인은 내 여권과 외무부에서 보내준 입국허가증을 보면서 휴대전화기로 통화하고 있다. 아마도 외무부에 전화를 걸어 내 신원을 조회한 거 같았다. 야속하게도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난 공터에 서서 처량하게 비를 맞고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어쩐지 너무 일이 잘 풀리다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니 나도 우울해 진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압하지야 검문소
잉구리 다리를 건너는 마차
'포도주 한 잔의 인연 캅카스 여행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8화) 수쿠미에서의 좌충우돌 여행 (0) | 2015.12.29 |
---|---|
(제7화) 어서 와! 압하지야는 처음이지? (0) | 2015.12.29 |
(제5화) 조지아의 귀여운 천사 엘레네 (0) | 2015.12.29 |
(제4화) 디두베의 선술집 (0) | 2015.12.29 |
(제3화) 조지아에 입성하다. (0) | 201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