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아르메니아 브랜디와 스테파나케르트의 밤
아르메니아 특산품 브랜디
검문소에서 얼굴에 구레나룻에 카리스마가 있는 군인이 나에게 유창한 영어로 어디서 왔고, 어느 도시를 방문하느냐고 물어 나는 대한민국에 왔고 스테파나케르트에 여행하러 왔다고 답변하니 그는 Good Luck(행운을 빈다)며 친절하게 영문주소가 적힌 카라바흐 외무부 쪽지를 건네며 출입국 신고를 하라고 한다. 여기도 압하지야처럼 외무부에 가서 신고하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여기는 입국허가증 없이 바로 통과한다. 카라바흐 산은 더욱 험하고 척박하다. 게다가 눈길이 덜 녹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빙판길이라 거북이 운행까지 하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 차량 두 대가 눈밭에 빠져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해는 지고 차는 무사히 스테파나케르트 시내에 들어왔다. 이 험한 첩첩산중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별천지에 온 기분이다.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작은 로터리가 보이고 건너편에 우체국이 보인다. 여기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와 달리 독자적인 우표를 발행한다. 힘들게 여기 와서 꼭 우표는 사서 가야겠다는일념 아래 우체국에 들어가니 세 명의 나이 많은 직원 아주머니들이 일하고 있다. 나는 우선 기념엽서를 찾았는데, 카라바흐 상징 We are our Mountains 우리의 산 (일명 : 할아버지 할머니 상)이 그려진 엽서를 판다. 나는 몇 장을 구매하여 친구와 가족에게 간단한 안부를 적은 후 직원에게 예쁜 카라바흐 우표를 골라 붙여 보냈다. 우체국에서 시간을 허비하여 외무부에 신고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신고하고 우선 숙박할 곳을 찾아 우체국을 나왔다. 지나가는 남녀노소 나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조지아, 아르메니아도 가끔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여기 카라바흐 사람들은 동양인이 잘 오지 않는지 지나가면서 외계인 보듯 지나간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누구나 ‘헬로’ 하며 인사한다. 처음 찾아간 숙소는 민가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지도의 위치가 맞는데 밤이 되어 잘 안 보여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호텔 표지판이 보인다. 호텔표지판의 화살표를 따라 들어가는데 세차장 빼고는 캄캄한 가정집 몇 채뿐이다. 세차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 집을 가리킨다. 집 문을 두들기고 기다리니 인기척이 없다. 옆 창문으로 사람이 있는지 들여다보는데, 그때 한 남자가 문을 연다. 나는 호텔이냐며 방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이미 폐업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영업하는 줄 알고 왔는데, 하는 수 없이 다른 호텔로 향하였다. 오던 길을 되돌아와 큰 도심 길을 따라 도로 끝 큰 로터리에 정부청사가 자리 잡고 있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에서 작은 길로 들어서니 두 번째로 찾는 예레반호텔이 보인다. 근처 슈퍼에서 아침에 공장에서 본 작은 브랜디 한 병과 가벼운 안주를 사서 호텔에 들어왔다. 싱글 방을 구했는데 방 크기는 가족실이다. 방이 너무 커서 히터를 틀었는데 따뜻하지 않다. 혼자 방 쓰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이 정도면 완전 궁전 급이다. 호텔에서 스테파나케르트 지도를 구해보니, 오늘 호텔을 오는 경로가 이 도시의 주요지점을 대부분 거쳐 왔다. 밤이고 호텔 찾느라 대충 지나쳐 왔다. 내일 아침 카라바흐 상징물을 보러가면서 어차피 이 길을 다시 가야 하기 때문에 문제없다. 이런저런 내일 계획을 짠 후 카라바흐 무사 도착과 스테파나케르트의 밤을 위해 슈퍼에 산 작은 브랜디 병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병뚜껑 안 코르크가 부서져 병에 걸려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종이를 둘둘 말아 날카롭게 하여 코르크를 병 안으로 집어넣어 브랜디를 컵에 부었다. 컵에 둥둥 떠 있는 약간의 코르크 조각을 안주로 삼아 진한 갈색빛의 브랜디를 한 모금 들이켰다. 강렬한 향기와 포도 맛의 달콤함이 내 혀를 감아 목구멍으로 들어가면서 열을 발산한다. 히터가 따뜻하지 않은 큰 방에서 내 몸이 활활 달아오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한 모금이 딱 적당하다.
예레반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가는 길은 첩첩산중이다.
카라바흐 검문소에서 신고하는 아르메니아 사람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중심 스테파나케르트 시내
아르메니아 별도로 운영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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